첫 글 : 우울과 불면, 그리고 고양이 셋
안녕하세요, 라디입니다. 첫 글을 어떻게 시작할까 하다가. 앞으로 블로그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오랜 고민 끝에 글을 써 내려가 봅니다. 지금도 제 발치에서는 둘째 고양이 치노가 엄마를 한창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간식을 주지 않았거든요 하하… 약한 식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간식은 최대한 조심하는 중입니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세 마리 살고 있습니다. 살림하는 큰 고양이. 저 라디와 2022년 5월 12일에 동배에서 태어난 코숏 라떼와 치노입니다. 어쩌다가 고양이 셋이 모여 살게 되었는지 입양 스토리를 먼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다소 tmi가 되겠지만 양해 부탁드릴게요.
원래 울산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저는 2019년 7월 직장 문제로 인천으로 올라왔습니다. 오랜 시간 가족과 함께 지내다 혼자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없는 집의 문을 여는 게 싫어지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자주 먹게 되고, 그러고 불 꺼진 집으로 들어오면 그 감정의 차이가 우울로 번지더라구요, 혼자 타지 생활 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울산과 인천 거리와 시간상 문제로 자주 오가기도 어려웠죠.
세상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고, 힘든 상황의 사람들도 많은데 적당히 안정적인 회사와 그래도 같이 술 마셔줄 사람들이 있는 제가 뭐라고 우울증이 걸리겠나 싶어서 사실 저는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불면증이 생각보다 오래가고 깊어졌지만, 원래 잠을 많이 자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수면시간이 조금 더 짧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4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었으니 그냥 수면시간이 2시간 줄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죠)
지금은 주변에서 조금만 힘들어하거나 평소와 다르게 짜증이 늘거나 하면 무조건 병원을 추천합니다. 우울증이라는 게 생각했던 것처럼 그저 슬픈 감정이 과해지는 그런 것이 아니더라고요, 저는 우울증이 신체적인 증상과 짜증, 화로 나타났었습니다. 쉽게 감정이 격해지고, 소화가 안 되고, 잠이 오지 않고, 집에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런 상태.
연애도 해보고, 친구들도 만나보고, 울산도 가보고, 혼자 취미생활이나 소모임도 해봤지만 주변에 민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반려묘를 키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대 초반 대학생 때 길고양이를 데려와 키운 적이 있었는데 복막염으로 반년도 함께 하지 못하고 보냈던 기억이 있어서 참 오랫동안 고민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고양이 전문 병원도 별로 없고, 복막염 치료제도 없었으며, 진단조차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아이를 별나라로 보낸 후에야 그것이 복막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단법인 나비야 사랑해 : 포포네 아이들, 입양준비
제가 또다시 생명을 책임지고 언젠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화초만 키우며 보내던 어느 날 회사의 후배가 저에게 인스타그램 링크를 보내주더라고요 ‘나비야 사랑해’라는 사단법인의 계정이었습니다. 많은 고양이를 구조해서 보호하고 있는 곳으로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소개하는 계정이었습니다. 처음에 후배가 보여준 아이를 보고도 계속해서 고민만 길어졌고, 그 이후로도 나비야 계정의 많은 아이가 입양을 가고, 또 새로 소개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눈길이 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의 이름은 ‘포오’ 지금 우리 집의 ‘라떼’입니다. 너무 이쁜 회색 태비 고양이, 엄마 고양이인 ‘포포’가 구조된 후 가정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 그 당시 2~3개월령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쁜 아이니 금방 입양처를 찾겠지? 하면서 입양 조건과 신청서를 받아보았는데 혼자 사는 저는 입양 조건이 조금 모자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또 한달가량을 고민만 한 것 같습니다. 내가 과연 이 아이를 구조한 사람들이 봤을 때, 입양처로 적당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이렇게 이쁜 포포네 아이들이 아무도 입양이 결정되지 않았더라고요, 용기를 내서 서류를 보냈고 1차 서류가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일주일쯤 뒤에 받았습니다. 서류를 낼 때부터 이미 결심이 섰기 때문에 집에 방묘창을 먼저 달았고(세이펫 안전문 180), 화장실과 이동장을 구매했습니다. 화장실은 미야옹철의 대형 화장실과 원목 중대형 화장실 두 개를 구비했고, 다행히도 지금까지도 두 개를 다 잘 쓰고 있습니다. 이동장은 처음엔 배낭형을 샀었는데 지금은 캐리어형 이동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애들이 이제 무겁거든요. 가족과 함께 사시는 분들은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고, 저처럼 자가주택에 거주하지 않은 세입자의 경우엔 집주인의 허락도 미리 받아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들과도 대면할 겸 임시 보호자 분 댁으로 대면 면접을 보러 갈 날짜를 잡았고 2022년 추석 연휴 전,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사진으로 보고 반했던 포오, 지금의 라떼는 캣타워 위에서 잠만 자고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요, 약간 소심한 경향이 보였고 경계심이 좀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양이 방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포동이, 지금의 치노는 바로 무릎 위로 올라왔고, 제가 갈 때까지 내려올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원래는 라떼만 입양하려던 저는 동배에서 태어난 치노까지 덜컥 입양을 약속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추석 연휴엔 울산엘 다녀와야 해서, 연휴가 끝나고 금요일에 애들을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베란다 방묘창을 추가 설치하기로 했고, 아이들이 쓰던 모래 (로마 샌드+화이트홀 카사바)와 사료(아카나 그래스랜드 캣)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장난감도 사고, 정수형 급수대도 사고, 간식도 잔뜩 사고, 빗도 사고, 발톱 깎기도 사고, 필요하다는 건 전부 다 구비를 하려 노력하고 신나게 쇼핑한 시간이었습니다.
2022년 9월 16일 가족이 되다.
그리고 아이들은 2022년 9월 16일 가족이 되었습니다.
첫날부터 적응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라떼는 급수대에 겁먹어서 추가로 볼을 더 사서 설치했고, 치노는 이틀 후부터 허피스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눈꼽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러다 콧물과 재채기를 하고, 만성 코찔찔이가 되어서 약을 먹으면 코가 막히고 안 먹으면 재채기를 하는 날이 100일 정도 지속된 듯합니다. 작년 연말에서야 겨우 코가 멀쩡해진 우리 치노, 끝까지 같이 노력해줘서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는 완전히 이 집의 주인님들이 된 치노와 라떼를 그럼 소개해 볼게요
우리 치노는 별명 부자입니다. 치라노 사고루스, 사고뭉치노, 나르시치노, 치랭이, 치꼬맹이 등등, 별명에서 성격이 어느정도 보이지 않나요? 치노는 대놓고 사고를 치는 속써기미 입니다. 속은 썩이는데 귀여워…. 하찮고 귀엽고 난리. 테이블 위에 있는 건 우르르 쾅쾅 몸통 박치기로 보내버리기 일쑤고, 유리잔도 몇 번 깨고, 물그릇도 엎어버리고, 놀다가 장난감은 전부 물그릇에 퐁당퐁당~
좋아하는 장난감은 탁구공과 빵 끈입니다. 빵 끈 물고 라떼에게 으르렁 할 때면 하찮은 호랭이 같아서 치랭이입니다. 수컷 고양이인데 몸이 약한지 라떼와는 1kg 가까이 차이가 나고 소화를 잘 못 시킵니다. 처음 키웠던 고양이가 잘 안 크고 설사하고 토하다가 복수가 차면서 급작스럽게 무지개다리를 건넌 터라 치노 건강 상태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허피스로 100일 넘게 고생했고, 지금도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코찔찔이가 되고 설사를 자주 합니다. (장염도 아니고, 코는 당분간 항생제 없이 네블라이저 치료만으로 케어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항생제는 심할 때가 아니면 투약을 중지하자고 하셨고요)
그리고 엄마가 자면 배 위로 점프하는 발랄 꼬맹이에, 새벽 5시부터 깨물깨물로 깨우는 수다쟁이입니다. 일어나지 않거나 늦게 들어오면 애요에용 잔소리가 엄청납니다 ㅎㅎ
라떼는 치노와 동배에서 태어났고 역시 수컷 고양이입니다. 한 번도 건강 문제로 엄마를 힘들게 한 적이 없고 조금 소심한 아이죠. 우아하게 생겨서 조금 새침한 공주님 같은 아이예요. 하지만 꾹꾹 이도 열심히 하고 엄마가 누워있으면 배 위로 올라오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궁디팡팡을 너무 좋아하는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질릴 때까지 궁팡을 받다가 돌아갑니다.
그래서, 궁 팡 맨, 영감님, 공주님, 왕자님 치노 와는 확연하게 다른 별명들로 불리고 있습니다. 별명 중에 영감님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동배에서 태어났는데도 치노랑 덩치도 모질도 생김새도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털이 치노에 비해서 훨씬 길고 보슬보슬한데 자려고 눈을 감으면 눈 끝이 살짝 덮여서 영감님처럼 보여요.
사고를 치는 방법도 치노 와는 매우 다른데, 치노는 소소하고 잦은 사고를 친다면 라떼는 얌전하다가 한번 사고를 칠 때 대형 사고를 칩니다. 하지만 정말 사고 치는 횟수가 적기 때문에 나름 효자?
앞으로 이 블로그에는 고양이에 대한 정보들과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많은 집사님께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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